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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lagard
[Buried Alive (s4056)]
SIWAN / | ART ROCK | KOREA | 1CD | 501004056

최근입고 : 2009-01-23

주문수량 :
{ Track List }

DISC 1
1. Anglagard - Buried Alive
2. Hostsejd (epilog)
3. Ifran Klarhet Till Klarhet (hybris)
4. Jordrok (hybris)
5. Kung Bore (hybris)
6. Prolog (epilog)
7. Sista Somrar (epilog)
8. Vandringar I Vilsenhet (hybris)
{ Comment }
ANGLAGARD - Buried Alive

90년대 심포닉 록의 프로토타입을 제시한 앵글라고드의 라이브 앨범

아트 록의 쇠퇴기

의심할 여지없이 70년대 초반은 록, 특히 주관적 취향이 강하게 개입되었던(혹은 자아와 타자간의 관계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하려 했던) 실험적 록 음악의 전성기였다. 우리들이 소위 아트 록이라고 부르는 수많은 장르 분화와 각각의 정형화는 이미 이때 거의 완료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바로 ‘정형화’에 있었다. 기왕에 록 음악에 예술적 담론을 실어 내보려 했다면, 대중들의 의식을 고양시키고 전체적이거나 다발적인 변혁의 씨앗을 준비하려했다면, 그 가장 큰 적이었던 ‘타성’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영감을 지속적으로 제공했어야 옳다. 그런데 작가들 자신이 ‘타성’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클래식의 우월감과 고상함을 비비꼬려 했던 것으로 비춰졌던 E.L.&P.가 「Works」를 통해 다시 클래식 진영에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며 오케스트라의 세례를 받았고, 예스는 온건한 형식미학주의의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치 그들은 이전 자신들의 너스레에 쑥스러움조차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와중에 상당수의 군소 언더그라운드 아트 록 그룹들은 이미 파산 선고를 마친 상태였다. 때마침 등장한 펑크는 기존 록 음악의 (위선적이라는) 진지함에 침을 뱉으며 계급적 당파성을 주장하고 나왔다. 그러나 아트 록과 펑크 모두 주류 대중 음악의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자본주의가 대중 문화를 다루는 방식은 이미 세련될 대로 세련돼졌으며, 이 두 장르의 효용성이 이미 다했음을 자본은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험적 또는 대항적 록 작가들은 이제 빈궁한 토대 하에서 독립을 선언하거나 자본을 설득 혹은 그와 화해하는 기술을 습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80년대가 시작되었다.



80년대의 아트 록

80년대 등장한 신생 아트 록 그룹, 특히 심포닉 록계 그룹들의 성격을 악의적으로 표현한다면, ‘70년대 선배 그룹들에 대한 경외감과 콤플렉스로 가득 찬 회고적 취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선배들의 골수 대신 껍데기만을 전수 받았다. 이들은 소위 ‘XX의 아이들’이라는 모욕적인 언사를 감수해야 했는데, 지금 기억에, 가장 많았던 것은 제네시스 계열의 그룹들이었다. 영국의 IQ, 독일의 노이슈반쉬타인(Neuschwanstein), 미국의 바빌론(Babylon) 등. 그나마 마릴리온 정도가 제네시스 음악의 창조적 변용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나, 피터 게이브리얼과 같은 치열한 작가 정신을 지닌 그룹은 나타나지 않았다. 80년대 초기에 제법 두각을 나타내며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였던 에니드(The Enid)나 팰러스(Pallas)도 ‘시대 착오’라는 혐의는 벗어나기 어려운 듯하다. 이후 오히려 이들보다도 함량 미달인 자칭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들이 속속 등장하게 되나 아트 록 애호가들이 갈망했던 ‘충격적 예술 체험’은 제공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들의 음악은 기존 애호가들의 갈증을 약간 해소해주기도 했으나, 정신이 거세된 형식 미학은 일부에게 대단한 혐오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90년이 되었다. 상황은 그다지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나, 두 나라에서의 소식들은 아트 록을 연주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평론가 그리고 애호가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 두 나라는 다름 아니라 일본 그리고 스웨덴이었다. 일본과 스웨덴에서 등장한 몇몇 신생 그룹들이 만들어낸 작품들은 80년대식 수동적 아트 록이 아니었다. 이들은 이전 선배들의 유산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에 분명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과 독창적 아이디어가 풍부하게 덧붙여졌다. 일본의 경우 과거 전통에 대한 도전적 성향이 강했다면, 스웨덴 그룹들은 비교적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의지가 보다 강조되었다. 바로 이러한 스웨덴 신생 아트 록 씬을 대표하는 그룹은 란드버크(Landberk), 아넥도텐(Anekdoten) 그리고 앵글라고드(Anglagard)였다.



스웨덴의 아트 록 그리고 세 신생 그룹

스웨덴은 지리적으로 아트 록 종주국인 영국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굳건한 음악적 토대를 지니고 있었다. 오히려 이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이들은 보다 독자적인 작품들을 선보일 수 있었다. 물론 작품의 수는 이태리나 독일에 비해 적지만, 대부분 완성도가 뛰어난 것들이었다. 스웨덴 아트 록 씬은 외형보다는 내용에 충실했던 셈이다. 스웨덴 아트 록의 역사는 메이드 인 스웨덴(Made In Sweden) 이나 노벰버(November) 같은 초기 하드 록 그룹들로부터 시작되지만 가장 두드러졌던 것은 심포닉 록과 체임버 록이었다. 로이네 스톨트가 이끌었던 카이파(Kaipa), 아틀라스(Atlas), 다이스(Dice) 같은 그룹들이 서정적이면서 투명한, 때로는 긴장감 넘치는 심포닉 록을 선보였으며 잠라 맘마스 만나(Zamla Mammas Manna)는 민속음악, 재즈, 클래식을 융합한 탁월한 체임버 록을 들려주었다.

특히 후자는 RIO(Rock In Opposition) 계열의 작가군 중에서 헨리 카우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독창적이면서도 뛰어난 작품들을 발표했다. 민속음악에 기초한 록 음악도 만만치 않다. 보 한슨(Bo Hansson)이나 케브네카이제(Kebnekaise)는 그 대표적 예이다.

70년대부터 꾸준히 이어온 스웨덴 아트 록의 전통 그리고 90년대 돌연 등장한 탁월한 세 그룹, 란드버크, 아넥도텐, 앵글라고드. 이들의 치밀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리듬과 묵직한 리프 그리고 차가우면서도 투명한 감성의 원류를 자국내 전통에서 찾는다면 ? 필자는 트레티오아리가 크리겟(Trettioariga Kriget)이라고 생각한다. 70년대 중반에 활약했던 이 그룹의 초기 두 작품은 중반기 킹 크림즌을 연상케하는 복잡한 변박자와 중후한 기타 플레이즈 그리고 멜로트론을 주무기로 내세운, 헤비 심포닉 록을 들려주고 있다는 면에서 이들 세 그룹의 음악과 일치하고 있다. 트레티오아리가 크리겟 쪽이 훨씬 더 소박하긴 하지만.



심포닉 록에 대한 90년대식 대답 - 「Hybris」

1993년 초, 한 무명 그룹에 의해 제작 발표된 「Hybris」라는 앨범이 전 세계 아트 록 애호가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바로 1991년에 결성된 스웨덴의 신생 6인조 그룹 앵글라고드의 첫 작품이었다. 80년도부터 계속된 팜프 록(Pomp Rock, 아트 록의 정신 대신 웅장하고 화려한 면 등 외형만을 전수 받은 80년대 신생 아트 록을 지칭하는, 다소 경멸적인 뉘앙스의 용어)에 넌덜머리가 나 있던 이들을 스웨덴에서 날라 온 한 장의 CD(혹은 LP)가 감동시킨 것이다. 얼마 되지 않아 유럽과 미국 그리고 일본의 아트 록 전문지들은 한결 같이 이들의 특집 기사를 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열광토록 한 것일까 ? 우선, 이들의 음악은 최근의 기술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멜로트론, 하몬드 오르간, 플롯 등 70년대식 도구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으며 그것들의 사용 방법, 즉 연주자의 몸에서 발산되는 표현 욕구가 악기라는 하드웨어를 통해 다시 소리로 변조되는 과정 속에서 각 단계 사이에 존재하는 차단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요령을 잘 알고 있다. 간단히 말해 기계적 소리로 가득한 시대에 인간적 감성으로 충만한 소리를 만들어낼 줄 알았다는 것이다. 또한, 극적이면서 치밀한 곡 구조와 비트 그리고 시종일관 진지한 선율, 서양인들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그리스 신화적 상상력과 서사적 이야기 구조가 광기로 가득한 폭발음과 반전의 반복을 통해 음악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점 등. 이들은 70년대 주류 아트 록이 (서양의) 이성적 인간관에 근거한 인본주의에 기초하고 있음을 간파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속에 내재되어 있던 정수만을 골라 응집하고 재배치하고 있다. 이에 세기말적 우울함과 실험적 요소가 첨가되면서 70년대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되 다시금 그 전통과 ‘점선’으로 구분되는 90년대 심포닉 록의 프로토타입을 제시한 것이다. 이것은 일부 전위주의자들의 작품과 같이 파격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일면 보수적인 측면이 강한 것이 사실이지만, 창조적 재해석 작업이었음에 분명하다.



「Epilog」 그리고 라이브 앨범 「Buried Alive」

「Hybris」에 이어 94년에 제작된 두 번째 앨범 「Epilog」는 기존 여섯 명의 멤버에 네 명의 게스트가 더해져 제작된 작품이었다. 「Epilog」는 Hybris」의 연장선상에 있다고는 말하기 힘든 작품이었다. 이전과 같은 기승전결 뚜렷한 곡 구조로부터 상당히 탈피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으며, 각 소절간의 유기적 관계는 상당 부분 해체되어 있다. 극적 구조 대신 분위기와 영상의 음악적 묘사에 보다 치중하고 있다. 「Hybris」가 70년대 아트 록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면, 「Epilog」는 이를 훌쩍 뛰어넘어 20세기 초 현대음악과 대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 작은 기존 아트 록 전통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나선 중요작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시도는 기존 앵글라고드 지지자들의 기대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것이었으며, 이전에 비해 냉담한 반응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앨범명에서 시사한 바와 같이) 해산하고 말았다. 「Epilog」를 제작한 앵글라고드에 대해 필자는 호의적인 동시에 비판적이다. 호의적인 것은 전술한 바대로 이들이 새로운 심포닉 록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이고 비판적인 것은 이러한 시도가 성숙되지 않은 채 작품이 발표되었으며 그 이후는 후배들의 몫으로만 남긴 채 떠나버렸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Epilog」는 의문으로 가득 찬 작품이다. 「Buried Alive」는 그렉 워커(Greg Walker)에 의해 1994년 미국 LA에서 개최된 Progfest 중 이들의 공연 실황만을 모아 놓은 라이브 앨범으로, 지금껏 이야기한 「Hybris」와 「Epilog」에서 각각 전곡 및 세 곡의 연주가 실려있다. 이미 그들의 두 작품을 모두 소유하고 계신 분들께는 이들의 실황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기쁨을 제공할 것이며, 처음 접하시는 분들께는 이들의 음악 세계를 컴팩트하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된다. 후자의 경우, 이해를 돕기 위해 수록된 곡들이 실린 앨범을 아래에 명시하였으니 참조하기 바라며, 가능하다면 이들의 스튜디오 앨범도 구해 들어 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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