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Lewis

바흐 탄생 300주년을 기념해 바흐에 대한 경외와 사랑을 절실히 표현한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930년대 초, 미국 일리노이주 라그란지에 있는 가정집에서 한 흑인 소년이 넋이 빠진 채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 곡은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한 바흐의 작품인데,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그가 직접 편곡한 다. 멜로디의 아름다움은 둘째 치고, 곡이 가지고 있는 소박한 매력과 논리적인 화성의 진행에 이제 열심히 클래식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소년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감동을 맛보게 된다. 그의 이름은 존 루이스. 후에 재즈계에서 큰 이름을 떨치게 되는 인물이다. 그런데 만일 이 날의 감동이 없었다면, 그가 과연 재즈와 클래식을 접목시켜 뭔가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만들려는 시도를 할 수 있었을까 ?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어쨌든 이날 오후 바흐의 강림은 한 음악가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어버렸다.
이로부터 50여년이 흐른 1984년, 일본 포노그램 음반사의 기획자 기요시 고야마는 심각한 표정으로 존 루이스와 통화하고 있다. 그 해는 마침 바흐의 탄생 300주년이 되는 해여서, 바흐와 관련한 많은 기획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런데 기요시는 단순한 클래식 음반이 아니라 재즈로 편곡된 바흐의 작품을 기획 중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대강의 아웃라인이 정해진 상태에서 모던 재즈 쿼텟의 음반을 비롯한 일련의 클래시컬한 실험을 성사시킨 동 그룹의 리더 존 루이스가 떠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바흐에 대한 존 루이스의 사랑을 익히 아는 터라, 어쩌면 이 기획은 존을 빼놓고는 절대로 진행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어쨌든 기획은 성사가 되고, 그 해 1월 뉴욕의 루트거스 교회에서 존과 기요시를 비롯한 여러 명의 뮤지션과 녹음 스탭이 모이게 된다. 역사적인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 잠깐 존 루이스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는 1920년 5월 3일 미국 일리노이주 라그란지에서 출생했다. 일찍이 오페라 여가수인 모친의 영향을 받아 재즈와 클래식에 심취했고, 7살 무렵에 정식으로 피아노 교습을 받기에 이른다. 1942년에 뉴 멕시코 대학을 졸업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이후 뉴욕 맨해튼 음대를 다니게 해서 결국 52년에 졸업하게된다. 그 사이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경력을 차근차근 쌓게 되는데, 최초의 파트너는 케니 클락이었다. 그는 비밥 파이오니어의 한 명으로 드럼에 있어서 큰 획을 그은 인물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46년 디지 길레스피의 빅 밴드에 동시 가입하면서 친교를 쌓기 시작하는데, 이후 각각 여러 세션과 그룹에 참여하다 52년에 다시 모이게 된다. 여기엔 두 사람말고도 전설적인 비브라폰 주자 밀트 잭슨과 명 베이스 주자 퍼시 히스도 함께 했다. 이래서 만들어진 그룹이 모던 재즈 쿼텟(이하 MJQ)다.
특별한 혼 주자 없이 만들어진 쿼텟 편성의 MJQ는 데뷔 앨범을 내놓은 후 곧 케니 클락이 유럽으로 이주하면서 어쩔 수 없이 탈퇴하지만, 대신 들어온 코니 케이가 그 공백을 훌륭히 메워주면서 역사적인 명반을 숱하게 배출하는 그룹이 된다. 등은 특히 기억해둘 만한 음반들이다.
MJQ의 역사는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다. 초기는 52년에서 74년에 이르는 시기로, 특히 74년 해산 공연을 기념해서 만든 두 매 짜리 라이브 음반은 재즈사에 빛나는 걸작이기도 하다. 그러다 81년에 다시 모여 그 후 존 루이스가 사망하는 2001년까지 활동하게 되지만, 솔직히 이 시기엔 그다지 특필할 만한 사항은 없다. 그저 역사적인 그룹을 보고 싶어하는 팬들을 위해 간간이 무대에 선 정도라고나 할까 ? 하지만 전기를 기술한다면 쓸 이야기는 많다.
앞서 바흐에 경도된 존 루이스를 언급했지만, 그가 클래식 음악 특히 바로크를 좋아하는 데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바로크 음악은 일반적으로 주선율과 반주로 이뤄진 패턴이 아니라 여러 성부가 각각 독립적으로 리더가 되어 전체적인 조화를 이뤄가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마치 재즈에서 여러 악기들의 제목소리를 내면서도 절묘하게 전체 앙상블을 이루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다시 말해 재즈와 같은 이디엄의 음악이 바로크인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바하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MJQ 시절에 존 루이스는 재즈와 클래식을 접목시키려는 시도를 숱하게 한 바 있다. 50년대 말에 이미 현악사중주단이나 관현악단과 조인트해서 공연도 했고, 62년에는 군터 슐러를 만나 재즈와 클래식의 명연주가들을 기용한 프로젝트를 시행한 바도 있는데 그것은 66년에까지 이어진 로 완성된다. 여기서 존과 군터 두 사람은 재즈도 클래식도 아닌 제3의 물결, 이른바 써드 스트림 뮤직을 선언하기도 한다.
이렇듯 독자적인 움직임을 주도한 존 루이스지만, MJQ의 멤버로서, 뛰어난 솔로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 외에도 많은 업적을 남기고 있다. 우선 작곡가로 말하면 61년에 발레 조곡 을 발표한 바 있고, 78년에는 뮤지컬 를 쓰기도 한다. 또 커머셜로 보면, 영화음악으로 (57년/로제 바딤 감독), (59년/로버트 와이즈) 등이 떠오르고, TV 영화 (75년)도 빼놓을 수 없다. 한편 교육자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쳐 74년부터 뉴욕 시립대의 퍼포밍 아츠 교수가 되는가 하면, 75년부터는 정기적으로 하바드 대학의 하기 강좌를 개설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여러 대학에서 그에게 명예박사를 수여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처럼 많은 명예박사를 받은 사람은 재즈 뮤지션으로서는 듀크 엘링턴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럼 문제는 본 작인데, 우선 구성부터 살필 필요가 있다. 바흐의 은 당시 복잡하게 존재하던 조성을 정리한 작품으로 클래식의 로 통한다. (참고로 는 베토벤이 쓴 32곡의 피아노 소나타임) 전체 구성은 1, 2권으로 구성된 총 48편의 프렐류드와 푸가다. 모두 다른 조성으로 쓰여진 점이 특징으로 결국 이 조성이 기반이 되어 서양 클래식 음악의 조성이 확립된 것이다. 그런데 각 편마다 프렐류드와 푸가 두 종류로 쓰였으므로 실제 곡수는 96개가 된다. 본 음반은 두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에서 발췌한 것이다. 사실 좀 더 기획이 이뤄졌다면 2권에서도 뽑았으면 싶고, 아니면 더 나아가 48편 모두를 연주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지만 이미 고인이 된 존 루이스인 만큼,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볼륨 1에 수록된 것들은 제1권 24편의 프렐류드와 푸가 중 1, 2, 6, 7, 21, 22 등 총 6편이다. 이것들이 각각 프렐류드와 푸가 형식으로 나뉘므로 실제 곡은 12개가 된다. 그리고 볼륨 2는 4, 5, 8, 9, 16 등 총 5편, 10곡이다. 재미있는 것은 프렐류드가 먼저 나오고 푸가가 나중에 나오는데, 프렐류드는 존 루이스가 피아노 솔로로 연주하는 반면, 푸가는 여러 악기들이 어우러져 합주하는 형식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오로지 예외는 5번의 푸가로, 여기서는 존이 피아노 솔로로 연주하고 있다. 특필할 것은 합주에 있어서의 구성이다. 피아노, 기타, 베이스가 3성을 맡은 가운데, 4성과 5성을 가끔씩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맡고 있기 때문이다. 각 악기들은 원곡에 충실하면서도 적절한 임프로바이제이션으로 곡 자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고 있어서, 이들의 앙상블을 듣고 있으면 마치 소년 시절의 존으로 돌아간 듯해서, 꿈꾸는 듯한 달콤함을 맛볼 수 있다.
대개 을 소장한 클래식 팬들이 많지만 실제 즐기는 경우가 드문 반면, 본 앨범을 들으면 이 작품이 실은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지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바흐 탄생 30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프로젝트 중에서 본 음반만큼 바흐에 대한 경외와 사랑을 절실히 표현한 것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어쨌든 본 앨범에 대한 평가는 1985년 연말에 이뤄진 주최의 재즈 디스크 대상에서 제작기획상을 수상한 것으로 십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간 명성에 비해 실제 구입하기가 난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의 라이센싱은 비단 재즈 팬뿐 아니라 클래식 팬도 아우를 수 있는 멋진 기획이 아닐까 한다. 되도록 밤이 깊은 시각에 혼자 틀어놓고 조용히 침잠해보면 바흐와 재즈가 주는 특별한 매력에 빠져 새벽닭이 우는 지도 모르고 심취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이종학)

200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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