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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만에 국내에 정식 공개되는 공연 실황 명반
MERCEDES SOSA / EN ARGENTINE- Enregistrement en Public (1982)
굳이 월드뮤직 애호가들이 아니더라도,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라는 이름의 무게감은 월드뮤직 분야뿐만 아니라 세계 음악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위대한 가수이다. 단지 노래를 잘 하기 때문이 아니라, 메르세데스 소사가 부르는 노래 속에는 단순히 예술의 순수한 아름다움 이외에 아르헨티나 현대사를 비롯한 인간의 역사, 그리고 인종과 민족, 국가와 언어를 초월하는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메르세세드 소사의 목소리와 그 노래 속에는 인생의 드라마가 함께 담겨 있다. '라 아메리카 속의 유럽'이 불리는 아르헨티나를 상징하듯 소사의 외모는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이지만 그 속에는 원주민의 피와 유럽인의 피가 함께 흐르고 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아르헨티나의 흥망성쇠를 몸소 체험하고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전설이자 상징이 바로 메르세데스 소사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사의 인생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이다. 40여 년 동안 펼쳐 보인 음악 인생 가운데에는 군사 독재 정부의 탄압과 망명, 그리고 목숨을 건 귀향이라는 숨가쁜 드라마가 있었고, 이 드라마가 끝난 이후에는 ‘건강’이라는 또다른 난관과 싸워야 하는 새로운 드라마가 있다. 그래서 지구 반대편(정확하게 지구 중심을 기준으로 반대편이다)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조차 메르세데스 소사라는 이름에 경의를 표하고 그의 예술에 감동한다.
우리나라에서 메르세데스 소사의 이름이 대중들의 입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90년대 초반부터였을것이다. 당시 음반 'Gracias a la vida(삶에 대한 감사)'가 라이선스로 정식 발매되면서 일부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격찬을 들었고, 이후 90년대 말에 프란시스 카브렐(Francis Cabrel)과의 듀오곡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당신께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해 왔어요)가 우리나라 영화 ‘정사’에 삽입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 곡이 수록된 베스트 음반이 'Best of Mercedes Sosa'라는 이름으로 공개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메르세데스 소사가 세계적으로 얻었던 지명도를 놓고 볼 때 지금까지도 국내에 소개된 음반들은 수입 음반으로 간간이 소개된 일부 타이틀과, 2000년에 발매된 '미사 끄리올라(Misa Criolla; 미싸 끄리오야로도 불리며, 현지에서는 1999년 말에 발매)', 2003년에 공개된 'Acustico Ao Vivo(어쿠스틱 공연 실황, 현지 발매는 2002년), 그리고 2005년 초에 공개된 'Interpreta Atahualpa Yupanqui(아타왈빠 유빵끼 작품집, 1977), 그리고 마지막으로 올해 가을 오랜만에 선보이는 스튜디오 레코딩 음반 'Coraz? Libre(자유로운 마음) 정도일 것이다. 물론 해외에서도 메르세데스 소사가 지금까지 발표한 모든 음반을 완벽하게 정리, 발표한 곳은 매우 드물며, 심지어 아르헨티나에서도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반 전부를 구하기란 매우 어렵다. 물론 메르세데스 소사의 공식 홈페이지(http://www.mercedessosa.com.ar)에 존재하는 디스코그라피는 공신력과 함께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수없이 존재하는 베스트 음반과 미공개 라이브 음원이 누락되어 있다. 또한 1982년 '아르헨티나 공연(En Argentina) 음반을 기준으로 이전 음반은 현재 입수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하지만 1982년 이후 발매된 음반들과 1982년 이전 음반들 가운데 CD로 공개된 몇몇 음반들을 통해 메르세데스 소사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것만으로도,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위대한 예술가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는 데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반과 예술을 이야기할 때 왜 1982년이 기준이 되는 것일까? 바로 이 해가 역사적인 공연인 메르세데스 소사의 브에노스 아이레스 오페라 극장 공연이 있던 해이자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담은 명반 'En Argentina'가 발매된 해이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생애와 예술
메르세데스 소사는 1935년 7월 9일, 아르헨티나 북부 뚜꾸만(Tucuman)에 있는 도시 산 미겔(San Miguel)에서 태어났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조부는 께추아(Quechua) 사람이었고, 조모는 프랑스 사람이었다. 흔히 아르헨티나를'라 아메리카 속의 유럽'이라 부르지만, 뚜꾸만은 1812년 아르헨티나가 독립을 선포한 역사적인 지명이며 현재까지 라틴 아메리카에서안데스 문화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지리적으로는 아르헨티나 북서부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안데스 산맥으로 보자면 맨 아래에 자리잡은 아르헨티나 전통문화의 중심지가 뚜꾸만인데, 이 곳에서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월드뮤직을 대표하는 두 명의 거장 - 음유시인 '아따왈빠 유빵끼(Atahualpan Yupanqui)' 메르세데스 소사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로 넘기기엔 그 의미가 크다(1977년, 메르세데스 소사는 백인이면서 안데스 문화에 동화되어 평생을 안데스 전통 음악에 헌신한 이 거장의 작품을 새롭게 해석해 음반 'Interpreta Atahualpa Yupanqui'로 담아냈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데뷔는 1965년 민속 음악 축제에서였다. 전통 의상을 입고 전통 타악기 봄보(Bombo)를 연주하며 노래하던 소사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고, 결국 메르세데스 소사는 필립스(Philips) 사와 계약을 맺는 데 성공한다. 이후 1967년부터 세계 순회 공연을 통해 세계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수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 순회 공연이 이루어지는 동안 메르세데스 소사는 조국 아르헨티나의 암울한 정치 상황을 맞게 되고, 이것은 메르세데스 소사의 일생을 완전히 바꿔놓는 전환점이 된다.
아르헨티나의 군부 독재는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이어졌다. 아르헨티나 군사 정부는 집권 기간동안 대외적으로는 '아르헨티나 영토를 되찾는다' 명분 아래 영국을 상대로 '포클랜드 전쟁' 일으켰다. 물론 이 전쟁은 군사정권의 정통성 확보라는 시급한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쟁이었는데, 라틴 아메리카 여러 국가들은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는 추악한 전쟁이었음에도 아르헨티나의 영유권을 인정하며 '말비나TM 전쟁(포클랜드 전쟁을 라틴 아메리카에서 부르는 이름. 포클랜드 제도의 원래 이름이 말비나스 제도이다)' 심정적으로 동조했다. 그러나 이런 지지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패배한 아르헨티나 군사 정부는 결국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국민들은 포클랜드 전쟁의 패배로 정치, 경제, 그리고 심리적으로 참담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메르세데스 소사는 당시 해외 공연을 통해 아르헨티나 정치와 인권 상황을 해외에 알리고 있었는데, 이 사실을 안 아르헨티나 군사 정부는 1979년, 결국 국내 공연 중이었던 메르세데스 소사를 관객들과 함께 체포한 뒤 영구 추방했고, 이후 메르세데스 소사는 스페인과 프랑스를 거점으로 더욱 활발한 무대 활동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메르세데스 소사는 남편을 잃었고 건강에도 심각한 적신호가 켜지면서 세계 음악 애호가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1982년 2월, 결국 메르세데스 소사는 조국의 민중을 위해 노래할 것을 결심하고 목숨을 건 귀국 길에 올랐고, 브에노스 아이레스 오페라 극장에서 전설적인 공연을 갖게 된다. 이 공연은 단순한 대중 음악인의 공연 차원을 넘어, 전쟁을 통해 커다란 상실감을 가지고 있던 아르헨티나 국민들을 위로함과 동시에 잠재해 있었던 군사 정부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 결국 1983년 아르헨티나 군사 정부는 포클랜드 전쟁의 패배 이후 예고된 최후를 맞았고, 이후 메르세데스 소사는 보다 활발한 음반 활동과 세계 순회 공연을 통해 진정한 예술의 참된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음악적 동지였던 레온 히에코(Leon Gieco), 찰리 가르시아(Charly Garcia) 등과 함께 아르헨티나 순회 공연을 가지는가 하면, 존 바에스(Joan Baez)와 함께 남북 아메리카 대륙을 순회하면서 한 무대에 함께 올라 'Garcias a la Vida(생에 대한 감사)'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망명 생활부터 고질병으로 안고 있던 심장 질환은 메르세데스 소사의 예술 활동을 가로막았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1997년과 2003년에 있었던 입원 사태였는데, 2003년의 경우는 9월 4일로 예정되어 있던 첫 서울 공연을 취소시킬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고 한다. 이 와중에도 메르세데스 소사는 1998년 음반 'Al Despertar(잠에서 깨어나)' 발표하는가 하면, 숙제로 남아있던 아리엘 라미레스(Ariel Ramirez)의 작품 '미사 크리올라' 발표하면서 세계 음악 애호가들을 열광시켰다. 이후 2002년 실황 음반 'Acustico en Vivo' 통해 음악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을 세계에 알리고 있지만, 지금도 건강상의 이유로 장거리 비행이나 무리한 순회 공연은 자제하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2004년 9월로 예정되었던 내한 공연과 사상 최초의 아시아 순회 공연 역시 건강상의 이유로 취소되었지만, 세계 음악 애호가들의 우려를 뒤로 하고 2005년 여름 새 음반 'Coraz n Libre(자유로운 마음)' 발표하기도 했다.
음반 'En Argentina(아르헨티나 공연 실황)'
'En Argentina'로 불리는 이 음반은 스페인 망명 생활을 하던 메르세데스 소사가 아르헨티나로 귀국하여, 1982년 2월 18일부터 28일 사이에 가진 브에노스 아이레스 오페라 극장 공연 중 하이라이트를 발췌한 것이다. 1982년에 더블 라이브 LP로 프랑스에서 먼저 정식 발매되었으며, 총 20곡을 담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당시 군부 독재 치하의 아르헨티나에서는 발매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프랑스 필립스에서 'En Argentine(LP번호 6636 351)'이라 프랑스어 제목을 달고 출시되었다. 프랑스 LP 버전 이외에도 이 음반은 다양한 버전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현재 인터넷에서 쉽게 검색이 되는 폴리그램 라티노(PolyGram Latino)의 72분 짜리 타이틀(314 510 499 2)이 있으며, 이번 라이선스 음반의 음원이다. 아쉬운 것은 당시 수록 시간의 한계 때문에 오리지널 LP 레코딩에 수록된 'Soy pan, soy mas'와 'El Cosechero'가 누락되어 있다. 그리고 독일 트로피칼(Tropical) 레이블에서 내수용으로 발매한 타이틀 'Live in Argentinien(발매 번호 680.916)'에는 오히려 이 두 트랙이 수록되어 있지만 'Alfonsina y el mar(알폰시나와 바다)를 비롯한 다른 네 곡이 삭제되면서 역시 한 장의 CD로 발매되었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발매된 음반들이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폴리그램 라티노에서 발매된 타이틀이 CD 시대의 공식 음반으로 인정받고 있다. 단, 국내에서 발매되는 이번 라이선스 음반은, 세계 최초로 발매된 프랑스 LP 발매반의 표지 그림과 공연 사진을 사용해 오리지널에 최대한 가깝게 발매되는 세계 최초의 CD이기도 하다.
음반 수록곡의 원작자들을 살펴보면,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권에서 정평이 나 있는 작곡가와 가수들의 곡이 거의 망라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실비오 로드리게스(Silvio Rodriguez), 비올레타 파라(Violetta Para), 레온 히에코(Leon Gieco), 아타왈빠 유빵끼(Atahualpa Yupanqui), 아리엘 라미레스(Ariel Ramirez), 찰리 가르시아(Charly Garcia) 등, 모두 열거하기에도 힘들 정도로 지명도 있는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강렬하고 힘있는 특유의 목소리로 풀어내고 있다.
이 음반의 최고 백미는 side 2 첫 번째에 담겨 있으면서 가장 많이 알려지기도 한 <인생에 대한 감사(Gracias a la Vida)>일 것이다. 국내 라이센스에 소개된 음반 타이틀이기도 하며, 이 곡을 작곡한 비올레타 파라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바로 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곡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컬하기도 하다. 곡목이 '인생에 대한 감사'이기 때문일까. 물론 소사에게는 더더욱 남다른 감회가 있을 것이다. 군부독재를 피해 스페인 망명생활을 하다가 다시 밟은 고국 땅에서 부르는 ‘인생에 대한 감사’. "그래서 나는 삶에 대해 감사하고 또 이렇게 여기서 노래를 부릅니다"라 후반부 가사가 흐를 즈음이면 소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고, 관중들을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박수소리는 점점 커지고 소사의 목소리는 점점 흐느끼면서 진실로 삶에 대한 감사의 노래를 부른다... 비올레타 파라의 원곡에서도 느끼기 힘든, 존 바에즈 또는 마리아 파란두리(Maria Farandouri)가 부른 라틴 리듬의 곡이나 그라시엘라 수잔나(Graciella Suzanna)의 버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맛이 소사의 목소리에 담겨 있다.
여류 시인 알폰시나 스트로니(Alfonsina Stroni)의 이야기를 담은 펠릭스 루나(Felix Luna) 작사, 아리엘 라미레스 작곡의 ‘알폰시나와 바다(Alfonsina y el Mar)’ 역시 이 음반에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작품이다. 라미레스-루나 콤비는 '미사 크리올라(Missa Criolla)' 비롯해 ‘남미 칸타타(Cantata Sudamericana)’ 등으로 이어지면서 메르세데스 소사와 함께 운명적인 예술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아따왈빠 유빵끼의 ‘자매들(Los Hermanos)’, 아르헨티나 포크와 록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레온 히에코의 'Solo le pido a dios(신에게 단지 원하는 것은)'에서는, 원작자 레온 히에코가 기타 반주와 하모니카를 맡아 연주하고 있다. 물론 곡 중간에 레온 히에코의 목소리와 함께 소사의 감사 인사를 생생한 실황으로 들을 수 있다. 이외에도 찰리 가르시아 역시 직접 출연하여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는데, 이처럼 화려한 라인업과 함께 최고의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 바로 역사적인 명반 '아르헨티나 공연 실황'이다.
월드뮤직 애호가들에게는 반드시 들어보아야 할 역사적인 명반으로 평가받는 '아르헨티나 실황 공연'이지만, 글쓴이에게는 개인적으로 여러 추억이 담긴 음반이기도 하다. 글쓴이가 이 음반, 특히 이 음반의 표지로 사용된 프랑스 LP를 구했던 겨울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눈을 맞으면서 술에 취해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면서 몇 번이고 미끄러지면서도 행여 이 LP 음반이 깨어질세라 꼬옥 끌어안고 오던 기억이 새롭다. 술에 취해 미끄러졌는지, 길거리에 쌓이는 눈 때문에 미끄러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른 집으로 들어가 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길에 미끄러지면서도 발걸음을 재촉했던 기억... 집에 돌아와 턴테이블에 ‘인생에 대한 감사’ - 'Gracias a la Vida' 걸어놓는 순간 이상하게도 눈물이 났던 것은, 분명 소사와 같은 시대에 살면서 소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데에 대한 필자 나름대로의 '삶에 대한 감사'가 아니었나 싶다.
(글: 황우창)